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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코스

청량산에서 안동 퇴계의 오솔길을 거닐다

소개

청량산의 청정함과 산세의 신비함은 이미 말할 것도 없다. 고풍스러운 청량사와 안동의 퇴계길을 거닐어보자.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끓길 듯 이어지는 이 길은 예나 다름없이 빛나는 길이다. 강따라 걷는 길은 느림과 더불어 아늑한 고향으로 향하는 듯 행복하다.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길 199-152

코스 지도

1 청량사(봉화)
청량사(봉화)

청량산도립공원 내에 자리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이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한 청량산에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와 망선암 등 크고 작은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했다. 청량사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청량사 유리보전이 보존되어 있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으로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청량사가 내청량이라면 응진전은 외청량이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663년에 세워진 곳으로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에 든다.

2 안동 퇴계 오솔길 (녀던길)
안동 퇴계 오솔길 (녀던길)
3 도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상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직접 거처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에 건립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년), 퇴계 선생이 낙향한 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곳으로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 부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선조 9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574년, 지방 유림의 뜻을 모아 사당을 건립하여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전교당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년)에는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편액을 하사 받아 사액(賜額) 서원이 되었고 이로써 영남 유학의 총본산 역할을 하게 되었다. 1615년(광해군 7년)에는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하였으며 1792년(정조 16년) 정조 임금이 치제(致祭)를 내리고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시행하였다. 1796년(정조 20년)에는 시사단(試士壇)을 세웠고 1819년(순조 19년)에는 장서고(藏書庫)인 동광명실(東光明室)이 건립되었다. 1870년(고종 7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도 제외되었으며 1930년(경오년)에는 서광명실(西光明室)을 중건하였고 1932년(임신년)에는 하고 직사(下庫直舍)를 이전하였다. 1969년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지(324,945㎡)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증축 사업이 진행되어 우리나라 유학 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되었다. 1977년에는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었으며, 관리·운영 조례를 제정·공포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16기 출연진이 한복을 입고 랜덤으로 파트너를 매칭한 장소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옷 색깔로 파트너가 정해질 때마다 시청자들이 대리 설렘과 긴장감을 느낀 장소이기도 하다. 인근에 조성된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서당 내부 뿐만 아니라 왕버들, 시사단 등 서원의 다양한 명물을 만날 수 있다.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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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도립공원 내에 자리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이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한 청량산에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와 망선암 등 크고 작은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했다. 청량사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청량사 유리보전이 보존되어 있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으로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청량사가 내청량이라면 응진전은 외청량이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663년에 세워진 곳으로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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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상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직접 거처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에 건립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년), 퇴계 선생이 낙향한 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곳으로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 부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선조 9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574년, 지방 유림의 뜻을 모아 사당을 건립하여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전교당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년)에는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편액을 하사 받아 사액(賜額) 서원이 되었고 이로써 영남 유학의 총본산 역할을 하게 되었다. 1615년(광해군 7년)에는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하였으며 1792년(정조 16년) 정조 임금이 치제(致祭)를 내리고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시행하였다. 1796년(정조 20년)에는 시사단(試士壇)을 세웠고 1819년(순조 19년)에는 장서고(藏書庫)인 동광명실(東光明室)이 건립되었다. 1870년(고종 7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도 제외되었으며 1930년(경오년)에는 서광명실(西光明室)을 중건하였고 1932년(임신년)에는 하고 직사(下庫直舍)를 이전하였다. 1969년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지(324,945㎡)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증축 사업이 진행되어 우리나라 유학 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되었다. 1977년에는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었으며, 관리·운영 조례를 제정·공포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16기 출연진이 한복을 입고 랜덤으로 파트너를 매칭한 장소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옷 색깔로 파트너가 정해질 때마다 시청자들이 대리 설렘과 긴장감을 느낀 장소이기도 하다. 인근에 조성된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서당 내부 뿐만 아니라 왕버들, 시사단 등 서원의 다양한 명물을 만날 수 있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5시간

코스거리

18.74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