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와 근대사를 두루 만나는 역사기행
소개
서울에 인접한 광주는 15세기 이후 조선백자를 생산하던 중앙관요가 밀집해 있었다. 현재 82개소에 달하는 조선백자 관련 유적이 남아있으며, 선조들의 맥을 잇는 도공들이 지금도 활발히 작업하고 있다. 병자호란의 현장인 남한산성 일대는 수도권 등산로로 인기 있고, 서울에 식수를 공급하는 팔당호는 시원스런 풍광이 일품이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31
코스 지도
과거 한양을 지키던 4대 요새 중 하나인 남한산성을 품은, 남한산성도립공원이 있다. 북쪽의 개성,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였다. 동쪽의 광주에는 남한산성이 있었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총 12.4km(본성 8.9km, 외성 3.2km, 신남 산성 0.2km), 높이는 7.3m이다. 원래 2천여 년 전,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백제의 시조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 옛 터를 활용하여 후대에도 여러 번 고쳐 쌓다가, 조선조 광해군 때(1621) 본격적으로 축성하였다 한다. 석축으로 쌓은 남한산성의 둘레는 약 12km이다. 자연석을 써 큰돌을 아래로, 작은 돌을 위로 쌓았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문과 문루, 16개의 암문을 내었으며 동서남북 4곳에 장대가 있었다. 성 안에는 수어청을 두고 관아과 창고, 행궁을 건립했다. 유사시에 거처할 행궁은 상궐 73칸, 하궐 154칸, 좌전 26칸으로, 모두 252칸을 지었다. 80개의 우물, 45개의 샘을 만들고 광주읍의 행정처도 산성 안으로 옮겼다. 이쯤 되면 남한산성의 중요성과 성안이 유치 가능 인구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성이 축조되고 처음으로 시행(인조 17년, 1639)된 기동 훈련에 참가한 인원만 해도 12,700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성내에 남아 있는 건물은 불과 몇 안 된다. 동·남문과 서장대, 현절사, 연무관, 장경사, 지수당, 영월정, 침괘정, 숭렬전 이서 장군사당, 보, 루, 돈대 등이 남아있다. 그중 4대 문과 수어장대, 서문 중간쯤의 일부 성곽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남한산성은 사적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한산성 전통음식마을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로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인근에 조성된 전통 음식 거리이다.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사의 주요 군사요충지인 남한산성은 조선 선조에서 순조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 제16대 인조 때 완공되어 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속하는 만큼 볼 것이 풍부하며 남한산성 주변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통 가옥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전통 한옥으로 지은 70여 개의 음식이 한곳에 모여 있는 이곳은 쌀밥, 도토리묵, 토종닭, 닭볶음탕 등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한옥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한정식을 즐길 수 있으며,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아 여행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천진암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 창립 선조들의(이벽, 정약종,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유해를 모신 한국천주교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성지에는 성모마리아 상, 천진암 대성당 터, 성모 성당 등 둘러볼 곳이 많이 있다. 36만여 평 성역에 3만여 평의 대성당 건립 터에서는 매년 수 만 명의 신도들이 모여 한국 천주교회 창립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팔당호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과 남종면에 걸쳐져 있는 호수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경안천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호소로서 1973년 댐의 설치로 형성되었다. 과거에는 물류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수도권 2천7백만 주민에게 물을 공급해 주는 곳으로, 현재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수도권 주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공간으로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출처 : 경기도청)
광주 조선백자 요지는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조선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로 1985년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6년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 발굴된 곳으로 ‘번천리 5호 가마’로도 불린다. 조선 세조 13년인 1467년에 왕의 명으로 처음 만들어져 이후 약 500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백자 가마터이다. 이곳에서는 1400년대 중반부터 조선백자 중 가장 우수한 백자를 구워냈으며, 382,738㎡에 이르는 면적에 300여 개의 가마터가 남아있으며 이 가운데 68개소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크기의 백자 요지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도 광주 일대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질 좋은 백자를 만들어내던 중심지였기에 조선 도자사 연구에 기반이 되는 지역으로 매우 가치 있는 곳이다. 가마터와 공방 터 외에 도자기와 관련된 전시품과 가마 발굴부터 이곳에서 만들어졌던 도자기 종류와 정보, 유물, 출토품 등을 볼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코스 구성
과거 한양을 지키던 4대 요새 중 하나인 남한산성을 품은, 남한산성도립공원이 있다. 북쪽의 개성,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였다. 동쪽의 광주에는 남한산성이 있었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총 12.4km(본성 8.9km, 외성 3.2km, 신남 산성 0.2km), 높이는 7.3m이다. 원래 2천여 년 전,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백제의 시조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 옛 터를 활용하여 후대에도 여러 번 고쳐 쌓다가, 조선조 광해군 때(1621) 본격적으로 축성하였다 한다. 석축으로 쌓은 남한산성의 둘레는 약 12km이다. 자연석을 써 큰돌을 아래로, 작은 돌을 위로 쌓았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문과 문루, 16개의 암문을 내었으며 동서남북 4곳에 장대가 있었다. 성 안에는 수어청을 두고 관아과 창고, 행궁을 건립했다. 유사시에 거처할 행궁은 상궐 73칸, 하궐 154칸, 좌전 26칸으로, 모두 252칸을 지었다. 80개의 우물, 45개의 샘을 만들고 광주읍의 행정처도 산성 안으로 옮겼다. 이쯤 되면 남한산성의 중요성과 성안이 유치 가능 인구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성이 축조되고 처음으로 시행(인조 17년, 1639)된 기동 훈련에 참가한 인원만 해도 12,700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성내에 남아 있는 건물은 불과 몇 안 된다. 동·남문과 서장대, 현절사, 연무관, 장경사, 지수당, 영월정, 침괘정, 숭렬전 이서 장군사당, 보, 루, 돈대 등이 남아있다. 그중 4대 문과 수어장대, 서문 중간쯤의 일부 성곽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남한산성은 사적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한산성 전통음식마을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로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인근에 조성된 전통 음식 거리이다.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사의 주요 군사요충지인 남한산성은 조선 선조에서 순조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 제16대 인조 때 완공되어 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속하는 만큼 볼 것이 풍부하며 남한산성 주변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통 가옥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전통 한옥으로 지은 70여 개의 음식이 한곳에 모여 있는 이곳은 쌀밥, 도토리묵, 토종닭, 닭볶음탕 등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한옥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한정식을 즐길 수 있으며,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아 여행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천진암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 창립 선조들의(이벽, 정약종,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유해를 모신 한국천주교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성지에는 성모마리아 상, 천진암 대성당 터, 성모 성당 등 둘러볼 곳이 많이 있다. 36만여 평 성역에 3만여 평의 대성당 건립 터에서는 매년 수 만 명의 신도들이 모여 한국 천주교회 창립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팔당호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과 남종면에 걸쳐져 있는 호수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경안천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호소로서 1973년 댐의 설치로 형성되었다. 과거에는 물류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수도권 2천7백만 주민에게 물을 공급해 주는 곳으로, 현재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수도권 주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공간으로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출처 : 경기도청)
광주 조선백자 요지는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조선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로 1985년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6년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 발굴된 곳으로 ‘번천리 5호 가마’로도 불린다. 조선 세조 13년인 1467년에 왕의 명으로 처음 만들어져 이후 약 500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백자 가마터이다. 이곳에서는 1400년대 중반부터 조선백자 중 가장 우수한 백자를 구워냈으며, 382,738㎡에 이르는 면적에 300여 개의 가마터가 남아있으며 이 가운데 68개소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크기의 백자 요지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도 광주 일대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질 좋은 백자를 만들어내던 중심지였기에 조선 도자사 연구에 기반이 되는 지역으로 매우 가치 있는 곳이다. 가마터와 공방 터 외에 도자기와 관련된 전시품과 가마 발굴부터 이곳에서 만들어졌던 도자기 종류와 정보, 유물, 출토품 등을 볼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소요시간
8시간
코스거리
60㎞
테마
자유여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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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
코스거리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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